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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가볼만한곳

울진 가볼만한 곳 성류굴 석회암 동굴의 역사

by 여행 맛집 오드리 2024. 7. 15.

 

울진은 볼거리 먹거리가 많은 곳이죠 불영사와 함께 울진의 대표적 관광지 성류굴을 소개하려 합니다.

성류굴은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있는 석회암 동굴입니다. 천연기념물 제155호로 지정된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석회암 동굴이며, 약 2억 5천만 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추정됩니다.

성류굴

 

목차

1. 성류굴의 특징 및 유래
2. 성류굴 정보
3. 성류굴의 역사

 

 

1. 성류굴의 특징 및 유래

 

울진 성류굴석회암 동굴

 

성류굴의 특징

동굴 길이는 약 870m이며, 이 중 약 270m가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습니다. 동굴 내부에는 종유석, 석순, 석주, 동굴진주 등 다양한 동굴 생성물이 분포하고 있으며, 특히 석순이 물에 잠겨 있는 모습은 매우 독특합니다. 성류굴은 한국의 대표적인 석회암 동굴로,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이지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석회암 동굴 : 성류굴은 길이가 약 870m에 달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석회암 동굴입니다. 다양한 동굴 생성물 : 성류굴 내부에는 종유석, 석순, 석주, 동굴진주 등 다양한 동굴 생성물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특히 석순이 물에 잠겨 있는 모습은 매우 독특합니다.

2억 5천만 년 전에 형성된 동굴 : 성류굴은 약 2억 5천만 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추정됩니다.

역사적 가치 : 성류굴은 신라 시대부터 사람들의 삶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굴 내부에서는 신라 시대의 토기 조각과 무덤이 발견되었습니다.

 

 

성류굴의 유래

성류굴은 원래 신선들이 한가로이 놀던 곳이라는 뜻으로 선유굴이라 불리었으나 임진왜란(1592) 때 왜군을 피해 불상들을 굴 안에 피신시켰다는 데서 유래되어 성스러운 부처가 머물던 곳이라는 뜻의 성류굴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성류굴은 한국 전쟁 때 피난처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성류굴은 영화 '동백꽃 필 무렵'의 촬영지로 사용되었습니다. 성류굴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입니다. 울진군을 방문하신다면 꼭 성류굴에 들러 보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2. 성류굴 정보

 

주소 : 경북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404-4

 

교통

대중교통 : 서울/동대구/포항/경주/안동 방면에서 울진시외버스터미널까지 버스 이용 후, 근남면 구산리 방면 버스 이용

승용차 : 서울(약 4시간 30분), 부산(약 3시간 30분), 대구(약 2시간 30분), 경주(약 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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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구분 개인 단체(30인 이상)
어른 19세 이상 ~  65세 미만 5,000원 4,000원
청소년, 군인 중고교생 및 19세 미만/하사이하 제복차림 군인 3,000원 2,500원
어린이 초등학생 2,500원 2,000원
노인 만65세 이상 1,000원 1,000원
울진군, 포항시, 경주시, 영덕군, 울릉군,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분 신분증  50%감면
다자녀가정, 한부모가정 신분증, 증명 서류 제시 50%감면
국가유공자, 장애인, 6세이하 어린이 신분증 제시 무료

음주자, 노약자, 애완견은 안전을 위하여 입장불가 / 음식물 반입 불가

노인입장권(상품권)은 성류굴 주변상가에서만 사용가능

월별관람시간 및 휴무일

1월 2월 11월 12월 관람시간 : 09 : 00 ~ 17 : 00 입장은 30분 전 마감

3월 ~ 10월 관람시간 : 09 : 00 ~ 18 : 00 입장은 30분전 마감

휴무일 : 매주 월요일 단 7월 20 ~ 8월 20일까지 휴무 없음

 

3. 성류굴의 역사

 

울진울진여행

성류굴의 역사

성류굴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신라 시대부터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신라 시대

명문과 불교 유적 : 성류굴 내부에서는 신라 진흥왕 14년(573년)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성불(聖佛)이 머무르는 굴"이라는 뜻의 명문과, 신라 시대의 불교 유적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성류굴이 신라 시대부터 불교 성지로 여겨졌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진흥왕의 방문 : 성류굴 내부에 새겨진 명문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 14년(573년)에 진흥왕이 직접 성류굴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성류굴이 당시 신라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장소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입니다.

고려 시대

불교 성지로서의 지속 : 고려 시대에도 성류굴은 불교 성지로서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습니다. 고려 충렬왕 24년(1298년)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명문에서도 성류굴을 "불성이 머무르는 굴"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

임진왜란 : 임진왜란(1592년) 당시에는 주민 500여 명이 왜군을 피해 성류굴에 숨어들었지만, 왜군이 동굴 입구를 막아버려 모두 질식사했다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성류굴은 '비운의 동굴'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선승들의 수행 : 조선 시대에는 성류굴이 선승들의 수행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조선 영조 32년(1756년)에는 선승 자운(慈雲)이 성류굴에 머물며 수행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현대

천연기념물 지정 : 1963년 10월 3일 성류굴은 천연기념물 제15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관광지 개발 : 1973년부터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석회암 동굴 관광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성류굴 역사의 중요성

성류굴의 역사는 단순히 동굴의 형성과 변화 과정을 넘어,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입니다. 특히 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이어지는 불교 성지로서의 역사는 한국 불교문화 연구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주민들의 비극적인 죽음은 전쟁의 참혹함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성류굴을 방문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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